▷ 책소개 여기, 결혼 육 년 차에 이유를 모른 채 아내로부터 헤어짐을 요구받은 남자가 있다. 서른다섯의 안경사 이재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내 두윤서는 돌연 이혼을 통보해온다. 빈집과 빈 침대, 아내의 부재,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제자리에 있던 것들의 질서가 동요하고 익숙함이 배반하는 풍경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남자가 느끼기에 이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따라서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징조나 전조 증세를 되짚어보다 지난밤 식탁에서의 사소한 다툼에서 애꿎은 이유를 끌어와보기도 하고, 외도를 의심해 아내를 미행하기도 하는 등 헤어짐의 이유와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보지만, 남자는 아무래도 그 이유를 ‘모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른다’는 서술어가 나머지 문장들을 견인해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모른다’는 서술어는 헤어짐의 이유 말고도 한 가지 목적어를 더 대동한다. 바로 결혼기념일에 도둑맞은 물건의 정체. 결혼기념일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짧고 의례적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의 눈앞에는 도둑이 들어 난장판이 된 집 안의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경찰이 수사를 위해 도둑맞은 물건의 목록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끝내 “무엇을 잃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도둑맞은 그 ‘무엇’의 실체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라캉이 해석한 ‘도둑맞은 편지’의 의미처럼 텅 빈 기표로만 남아 있다. 도둑맞았다는 유일한 진실만이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결핍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 목차 1부
2부
3부
4부
해설 기억과 망각, 연대와 적대의 아포리아 <*> 임정연
작가의 말
▷ 저자소개 심아진1999년 중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21세기문학』)로 등단. 소설집으로 『숨을 쉬다』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무관심 연습』, 장편소설로 『어쩌면, 진심입니다』 『후예들』 이 있다. 소설집 『신의 한 수』로 2022년 김용익소설문학상, 2023년 제1회 백릉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했다.2020년 ‘심순’이란 이름으로 동화 「가벼운 인사」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비밀의 무게』로 창비 좋은어린이책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