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1592년 임진년. 왜의 침입에 맞서 임금마저 피난길에 오르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싸워 이겼던 임진왜란의 스토리는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 같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TV 드라마와 누적 관객 수 천칠백만 명으로 한국영화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영화 〈명량〉의 흥행까지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녹아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제독이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살면서 반드시 한번은 읽어야 할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 목차 특별 부록 <*> 그림으로 보는 난중일기
임진년 1592년
1월 : 전쟁의 기운을 느끼다 / 2월 : 전투 준비를 하다 / 3월 : 거북선의 대포를 쏘다 /
4월 :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 5월 : 옥포에서 왜적과 대립하다 / 6월 : 당항포의 왜적을 물리치다
8월: 부산 앞바다에 이르다
계사년 1593년
2월 : 왜적 소탕을 위해 웅천으로 가다 / 3월 : 왜적과의 대립이 이어지다 / 5월 : 명나라 관리를 맞이하다 /
6월 : 진을 한산도로 옮기다 / 7월 : 진주성이 함락되다 / 8월 : 꿈속에서 유성룡과 만나다 /
9월 : 조총을 만들다
갑오년 1594년
1월 : 잠시 어머니를 뵙다 / 2월 : 호남의 왜적을 물리치다 / 3월 : 아픈 몸으로 수군을 지휘하다 /
4월 : 왜선 100여 척이 절영도로 가다 / 5월 : 왜적을 생포하다 / 6월 : 믿었던 사람을 잃다 /
7월 : 명나라 장수와 만나다 / 8월 : 권율과 이야기를 나누다 / 9월 : 적도에 진을 치다 /
10월 : 왜적을 위협하다 / 11월 : 왜적 수색을 명하다
을미년 1595년
1월 : 나라와 어머니를 걱정하다 / 2월 : 군량을 나누어 주다 / 3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계략을 간파하다 /
4월 : 왜선 50여 척이 진해로 가다 / 5월 : 왜적의 목을 베도록 하다 / 6월 : 어머니의 병환이 완쾌되다 /
7월 : 거제의 왜적이 물러가다 / 8월 : 임금의 뜻을 확인하다 / 9월 : 아끼던 사람과 이별하다 /
10월 : 왜적의 정세를 살피다 / 11월 : 달아나려는 왜적의 목을 치도록 하다 / 12월 : 체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병신년 1596년
1월 : 왜적의 움직임을 살피다 / 2월 : 둔전에서 벼를 받다 / 3월 : 몸이 불편해 신음하다 /
4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에 대해 듣다 / 5월 : 왜적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다 /
6월 : 계속해서 활을 쏘다 / 7월 : 도적이 일어나다 / 8월 : 아들들과 시간을 보내다 /
윤8월 : 백성들의 참혹한 삶을 보다 / 9월 : 전라도를 순시하다 / 10월 : 어머니를 위해 수연을 열다
정유년 1597년
4월 : 어머니와 영원히 작별하다 / 5월 : 비통한 심정을 참아 내다 / 6월 : 장수를 잃다 /
7월 : 왜적에게 대패하다 / 8월 : 3도 수군통제사를 겸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다 /
9월 : 명량 해전에서 승리하다 / 10월 : 아들 면을 영원히 잃다 / 11월 : 명나라 장수에게 축하를 받다 /
12월 : 임금의 명에 감격하다
무술년 1598년
1월 : 진을 치고 왜적을 치다 / 9월 : 명나라와 협공하다 / 10월 : 뇌물을 받고 명의 군사를 철수시키다 /
11월 : 충무공이 전사하다
참고 문헌
이순신 연보
옮긴이의 말 <*> 진정한 리더,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 저자소개 이순신李舜臣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1545년 3월 8일(양력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현재 서울 중구 인현동 1가)에서 태어났다. 사화로 몰락한 문반 가문의 네 형제 중 셋째이다. 순신이라는 이름은 중국 삼황오제의 순舜 임금에서 따온 것이다. 어려서 유학을 공부했고 21세 때 혼인한 이후 병학과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28세 때 처음 무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했고 32세 때 식년 무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무관으로서 승진과 좌천, 파면과 복직을 거듭한다.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다. 다음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 해전을 시작으로 사천 해전, 당포 해전,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 안골포 해전, 부산포 해전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선조 37년(1604년) 1등 선무공신에 책봉되었고, 인조 21년(1643년)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조 17년(1793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2년 뒤 《난중일기》를 포함해 그의 문집인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