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알베르 카뮈 탄생 110주년인 2023년을 맞아 새로운 장정과 번역으로 선보이는 ‘책세상 카뮈 전집 개정판’ 1권. 카뮈의 작품세계 중 ‘1단계 부조리’에 속하는 초기작으로, 무명작가 알베르 카뮈를 단번에 프랑스 문단의 신화로 만든 불멸의 역작이다. 뫼르소라는 인물에게 여러 종류의 죽음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카뮈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인 ‘부조리’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기존 전면 개정판에서 일부 번역과 표현을 고쳐, 번역본의 생명력을 더했다.
▷ 목차 1부
2부
미국판 서문
《이방인》에 대한 편지
해설: 죽음의 거울 속에 떠오르는 삶의 빛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2015년)
옮긴이의 말(1987년)
책 속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_9쪽
점심을 먹고 나자 좀 심심해져서 나는 아파트 안에서 어정거렸다. 엄마가 함께 살 때는 알맞은 아파트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너무 커서 식당의 테이블을 내 방으로 옮겨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내 방에서만 지낸다. 바닥이 약간 꺼진 밀짚 의자들, 거울이 누렇게 변색된 옷장, 화장대, 구리 침대 사이에서 말이다. _31쪽
그는 마송과 함께 갔고, 나는 여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려고 남았다. 마송 부인은 울고 있었고, 마리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았다. 나는 결국 입을 다물어버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_72쪽
나는 그에게 그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는, 벌떡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를 설득하려 들며 내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_88쪽
그는 내가 보기에도 과장되었다 싶은 어조로 페레스에게,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페레스는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웃었다. 그러자 내 변호사는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이 재판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다 사실이고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게 없습니다.” 검사는 수수께끼 같은 얼굴로 문서의 제목을 연필로 찔러대고 있었다. _115쪽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거야.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들,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들,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_151쪽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 152~153쪽
▷ 저자소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교에 갈 기회를 얻었다. 알제대학교 재학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고,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이후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일간지 기자로 일한다.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47년 《페스트》를 출간해 비평가상을 수상하고, 195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3년 뒤인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