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소설집의 표제작 「유대인 극장」은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고 있는 화자 ‘나’가 그곳에서 관람하는 연극의 제목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골렘 신화에 기반한 홀로코스트 실험극이라는 최소한의 사전 정보만 가지고 보게 된 연극은 ‘나’를 충격과 혼란에 빠트리고 망각 속에 묻어둔 어두운 개인적 기억의 뿌리를 건드린다. 딱히 이 연극이 아니더라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대규모로 자행된 폴란드 땅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역사의 화석층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추모의 분위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극우단체의 유대인 혐오 시위나 혐오 발언 또한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나’는 동양인으로서 ‘인종 혐오’를 직접 겪기도 한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폴란드 할머니가 ‘나’를 향해 급습하듯 내보인 ‘혐오’란 도대체 어디에서 연원한 것일까. 아마도 여기에는 하나의 가지런한 설명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역사와 정치의 질곡, 타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 원한에 갇힌 폭력의 시간 등등 숱한 이유가 얽히고설킨 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낯선 도시에 잠깐 머무는 방문객으로서는 도저히 그 뿌리를 헤아릴 수 없는 압도적인 무정형의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설 「유대인 극장」은 갑자기 바르샤바를 찾아온 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와중에 ‘나’가 그날 이후 계속 이 공포와 무력감을 곱씹어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실험극 형태로 진행되는 연극 ‘유대인 극장’의 난해하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 한편에서 유독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존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방제복을 입고 사람들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며 돌아다닌다.
▷ 목차 유대인 극장
소울 키친
스와니강
천국의 난민
그림자 그리기
리영광 씨가 오늘도 걷는 까닭은
베이비시터
삼합닭곰집에서
해설 부재와 오인, 그리고 연결의 상상력 <*> 정홍수
작가의 말
▷ 저자소개 이성아밀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으며 현재는 구례에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중앙대학교 문학예술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장편소설 『밤이여 오라』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재일동포들의 북송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와 『경성을 쏘다』, 소설집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와 『절정』, 인도양 한가운데에서 수장될 뻔했던 대양 항해기를 엮은 산문집 『나는 당신의 바다를 항해 중입니다』를 펴냈다. 세계일보문학상 우수상, 이태준문학상 수상.